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빈 공방전 (문단 편집) == 개전 == 1526년에 헝가리-크로아티아-보헤미아 국왕 [[러요시 2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모하치 전투]]에서 전사하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동생으로 황제 대리의 자격으로 신성 로마 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대공(작위)|대공]] [[페르디난트 1세]]는 즉각 자신이 헝가리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 러요시의 아내가 자신의 누이였고, 러요시 자신도 생전에 자신이 후계를 남기지 못하면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왕위를 넘기겠다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보헤미아 왕국]]과 [[크로아티아 왕국]]의 귀족들은 이에 동의했다. 반면 헝가리의 귀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의견이 양분되어 서부와 [[슬로바키아|북부]]의 귀족들은 페르디난트 1세를 헝가리 국왕으로 인정했으나 동부 [[트란실바니아|에르데이]] 출신 귀족들은 유력한 지방 귀족이자 대다수 귀족들의 민심을 얻고 있던 서포여이 야노시를 야노시 1세로서 옹립했다. 하지만 페르디난트가 야노시의 즉위를 납득할 리 없었고, 결국 그는 군사를 일으켜 헝가리를 침공했다. 페르디난트의 합스부르크군은 연승을 거두며 헝가리의 수도 부다를 비롯한 주요 지역을 점령해 나갔다. 이에 야노시는 처가인 [[폴란드 왕국]]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장인인 [[지그문트 1세]]가 거절하자[* 당시는 [[루블린 조약]] 체결 이전이라 지그문트 1세는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을 [[동군연합]]으로 통치하고 있었는데 [[모스크바 대공국]]이 리투아니아를 위협해서 쉽사리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게다가 지그문트 1세는 숙부 [[브와디스와프 3세]]가 오스만 제국과 정면승부를 펼치다 [[바르나 전투|바르나에서 전사한 악연이 있어서]] 오스만 제국과 정면승부는 피하려 했다.]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쉴레이만 1세를 찾아가 오스만 제국이 페르디난트에 맞서 싸우는 것을 도와주는 대가로 오스만 제국의 신하(봉신)가 되었다. 쉴레이만은 급한 대로 군대를 파견해 합스부르크군의 진격을 저지시켰다. 그 결과 헝가리는 합스부르크령과 오스만령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529년, 황제 쉴레이만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합스부르크의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헝가리로 향했다. 8월에 쉴레이만이 직접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 12만 5천명은[* 헝가리, 세르비아, 몰다비아, 불가리아인들이 포함되었다.] 9월까지 헝가리 전역을 수복하고 합스부르크 군대를 축출했다. [[브라티슬라바|포조니]]와 [[자그레브|자그라브]] 등을 제외한 동쪽의 요새들은 맥없이 오스만에게 넘어가고, 헝가리 수도 부다를 사수하던 합스부르크 주둔군은 패배하고 포로들은 남김없이 처형되었다. 한편 오스만군이 헝가리 전역을 점령하고 오스트리아까지 쳐들어올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페르디난트는 급하게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로 피신해 자신의 형인 황제 [[카를 5세]]에게 구원을 청했다. 당시 카를 5세는 이탈리아를 놓고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한창 대치중이었다. 이런 카를 5세에게 동쪽 변경에서의 급보는 곤혹스러운 문제였다. 카를 5세는 급한 대로 스페인과 독일에서 징발한 일단의 정예 보병을 오스트리아로 급파했다. 4년 전 합스부르크군이 프랑스를 무릎꿇린 [[파비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던 70세의 베테랑 장군인 니클라스 그리프 살름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빈 수비군의 지휘관으로 발탁된 살름은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그는 제일 먼저, 성벽을 견고하게 보강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리고 급속히 성의 동쪽에 요새와 누벽을 신설하고 6피트를 넘지 않는 성벽을 더 굳건하게 보강하고, 4개의 성문을 폐쇄시켰다. 이윽고, 오스만군의 흡사 [[전격전]]을 방불케 하는 진격으로 순식간에 수도인 빈의 성벽이 둘러싸이고 말았다. 빈 포위가 시작된 것이다. 참고로 오늘날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빈 공격이 계획된 것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즉 쉴레이만이 '어라, 합스부르크가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무너지는데? 이참에 오스트리아의 중심도시라는 빈까지 점령해버려...?!' 라고 생각한 것인지, 애초에 '헝가리는 시작에 불과하고, 오스트리아 전체를 제국의 영토로 만들겠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 확실한 건 쉴레이만에게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란 존재는 전 유럽을 제국의 발 아래에 두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었다는 점이다. ||[[파일:external/www.digiflame.com/MY_14_B.jpg|width=100%]][br]▲튀르키예 사극 [[위대한 세기]]에서 나오는 빈 공성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